2025-05-25
‘업무상 질병’ 요율 반영 대상서 제외
사업주, 승인처분 소송 실익 논란
제도 바뀌었지만 법원 판단은 엇갈려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일하던 중 다치거나 병에 걸리면 사업주들은 사업에 불이익이 있을지, 산업재해 보험료가 오르는 건 아닌지 두려울 수밖에 없다. 산재 처리로 인한 보험료 인상은 '개별실적요율'과 관계있다. 과거 3년간 산재 보험료를 납부한 금액의 합계액에 비해 산재 처리로 지급받은 산재 보험 급여액(산재 보험금) 합계액의 비율이 85%를 초과하게 되면 산재보험료율이 인상된다.
과거에는 업무상 질병으로 지급된 산재 보험금도 산재 보험료율을 산정할 때 고려됐다. 그 때문에 사업주로선 보험료 할증을 피하기 위해 산재를 은폐할 유인이 있었다. 2018년 12월 31일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징수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업무상 질병으로 인해 지급된 산재 보험금은 산재 보험료율 산정에서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다. 업무상 질병으로 산재가 인정돼 사업주의 산재 보험료가 인상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개정된 시행령에 의해 2019년 1월 1일부터는 업무상 질병을 산재로 인정해도 사업주에겐 일견 불이익이 없어 보인다. 최근 일부 하급심 판결들(서울행정법원 2022구합64232 판결, 서울행정법원 2024구합78122 판결 등)은 이런 이유로 사업주들에게는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 질병에 대한 산재 승인 처분을 다툴 법률상 이익이 없다고 봐 사업주의 산재 처분 취소 소송을 각하하고 있다. 해당 하급심 판결들이 드는 근거는 대체로 이렇다.
①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승인 처분은 근로자 또는 유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고, 사업주를 처분의 직접 상대방으로 삼고 있지 않다.
② 개정 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시행령에 의해 업무상 질병으로 산재 보험금이 지급되더라도 사업주의 개별실적요율에 영향이 없어 산재보험료가 인상되지 않는다.
③ 업무상 질병에 대한 산재 승인으로 인해 사업주가 속한 사업 종류의 산재 보험 급여 총액이 증가함으로써 업종별 요율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해당 사업주에게 직접적, 법률적 이해관계가 있다고 볼 수 없다.
④ 업무상 질병에 대한 산재 승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근로자나 그 유족이 사업주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등 소송에서 사업주는 업무상 질병이 아님을 주장, 입증할 수 있다.
다만 업무상 질병에 대한 산재 승인 처분으로 사업주의 산재 보험료가 인상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사업주가 위 산재 승인 처분을 다툴 법률상 이익이 있다고 보는 하급심 판결들도 존재한다.
근로자 측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공단의 산재 불승인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에서 사업주에게 산재 불승인 처분의 취소 여부에 대한 법률상 이해관계가 있다고 인정해 사업주의 보조참가를 허용한 하급심 판결(서울행정법원 2022구합54405 판결), 2019년 2월 7일 발생한 업무상 질병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승인 처분을 내리자 사업주가 이에 불복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해당 처분의 취소를 구한 소송에서 사업주에게 처분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다고 보고 실체 판단을 한 하급심 판결(서울행정법원 2019구단71113 판결은 사업주의 청구를 인용했고, 이 사건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2023누40993 판결은 사업주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상고 기각으로 확정됐다) 등이 그것이다.
업무상 질병이 산재 발생 실적에서 제외된다고 하더라도 사업주로선 업무상 질병에 관한 근로복지공단의 요양급여 승인 처분을 다퉈야 할 법률상 이익이 있다고 봐야 한다. 구체적인 근거는 다음과 같다.
① 업무상 질병에 대해 지급이 결정된 보험 급여액은 산재 보험 급여 금액의 '개별 요율 실적' 산정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업주가 속한 업종의 업종별 요율에는 반영될 수 있다. 결국 개별 사업주의 보험료 역시 상승할 여지가 있다.
② 현실적으로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 질병에 대한 요양급여 승인 처분은 근로자 측이 사업주에게 제기하는 손해배상청구에서 기초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강력한 근거로 작용한다. 선결문제가 되는 행정 행위의 효력에 관해 대법원은 "행정 처분이 아무리 위법하다 해도 그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해 당연 무효라고 봐야 할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 하자를 이유로 무단히 그 효과를 부정하지 못하는 것으로, 이런 행정 행위의 공정력은 판결의 기판력과 같은 효력은 아니지만 그 공정력의 객관적 범위에 속하는 행정 행위의 하자가 취소사유에 불과한 때에는 그 처분이 취소되지 않는 한 처분의 효력을 부정해 그로 인한 이득을 법률상 원인 없는 이득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대법원 2006다83802 판결)"이라는 일관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위법한 요양급여 승인 처분을 취소할 수 없게 되면 근로자 측이 업무상 질병을 원인으로 사업주를 상대로 제기하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사업주가 행정 처분의 공정력으로 인해 해당 질병이 업무상 질병이 아니라는 주장을 개진하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③ 근로복지공단이 업무상 질병 여부를 잘못 판단한 처분을 다툴 수 없게 되면 근로자의 사망은 산업안전보건법 제2조 제1호, 제2호의 산업재해 및 중대재해에 해당한다. 사업주는 고용노동부 장관에 대한 보고 의무(산업안전보건법 제54조 제2항, 제57조 제3항)를 부담하게 되고 이를 위반할 경우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처분의 대상이 된다(같은 법 제175조 제2항 제2호). 고용부 장관이 사업주에게 안전보건 개선계획의 수립·시행 등을 명할 경우 사업주는 이에 따라야 하는 등 불이익을 받게 된다(같은 법 제56조 제2항).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24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서울행정법원에서 선고된 사건은 총 8506건이었고, 이 중 원고의 청구가 일부라도 인용된 사건은 1100건이었다. 이 통계는 행정소송에서 인용률이 비교적 낮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소송 당사자가 재판받을 자격조차 인정받지 못한다면 현실적인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당사자에게 큰 아쉬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행정 소송에서 원고적격을 지나치게 넓게 인정할 경우의 부작용도 충분히 고려돼야 하겠지만, 동시에 국민의 권리 구제를 위한 사법 절차가 과도하게 제한돼선 안 될 것이다. 사업주와 근로자 모두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요양급여 승인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적격에 관한 하급심 판결 간 입장 차이가 하루빨리 정리되길 기대한다.
[기사전문보기]
"질병도 산재인데…왜 사업주는 못 다투죠?" [대륜의 Biz law forum] (바로가기)
방문상담예약접수
법률고민이 있다면 가까운 사무소에서 전문변호사와 상담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