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9

[특집]한국에선 침묵·미국에선 부인… 산재·개인정보 유출 놓고 두 얼굴
비판하면 사실이 아니라고 잡아뗀다. 얼마 뒤 새로운 증거가 나오며 그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난다.
노동자 과로사·산업재해 은폐와 개인정보 유출 논란에 휩싸인 쿠팡은 이런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고 있다. 특히 쿠팡은 한국의 사건을 미국의 소송이나 정부기관에 주장하거나, 미국 상황을 한국에서 설명하는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이를 두고 매출 90%를 한국에서 벌어가면서도 본사를 미국에 둔 쿠팡이 한·미 간 정보 격차를 악용해 책임을 회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쿠팡 “김범석이 산재 은폐하려 한 적 없다”
한겨레21이 미국 뉴욕남부연방법원에 제기된 쿠팡에 대한 주주들의 소송 서류를 입수해 살펴본 결과, 쿠팡은 2023년 고의로 산재를 숨겼다는 주주들의 지적에 “산재 은폐가 없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소송은 2022년 8월 뉴욕시 공무원 연금 등 쿠팡 주주들이 “허위 공시로 주가가 하락해 피해를 봤다”며 쿠팡과 김범석 쿠팡아이엔씨(Inc) 이사회 의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것이다. 쿠팡과 김 의장 등이 2021년 3월11일 상장 과정에서 주주에게 회사의 부정적 면을 숨긴 채 기업공개(IPO)를 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쿠팡 주가는 기업공개 직후인 2021년 3월 최고 약 69달러까지 올랐다가 2022년 20달러대까지 하락했다.
주주들은 특히 상장 이후 과로사와 알고리즘 조작 등이 보도되면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쿠팡이 노동자가 과로사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임을 숨기고 ‘안전하고 좋은 일터’라는 주장으로 주주들을 속였다는 얘기다. 아울러 주주들은 쿠팡이 △입점업체에 대한 가격 통제, 광고 강요 △검색 알고리즘 및 리뷰 조작 등 반경쟁·불공정 행위 같은 규제 리스크도 축소하거나 누락했다고 지적했다.
소송이 이어지던 2023년 11월 쿠팡은 이 주장에 대한 변론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산재 은폐를 극구 부인하는 내용이다. 내용을 보면 쿠팡 쪽은 열악한 노동문제와 관련해 “김 의장이 쿠팡의 과거 (노동현장) 안전 문제를 인정했다는 것이 (산재와 관련해) 무언가를 은폐하려 했다는 점을 시사하지 않고, 현재의 (노동 안전) 문제를 안다는 의미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열심히 일했다는 메모 절대 남기지 말라”는 김범석
이는 최근 논란이 되는 쿠팡의 ‘산업재해 은폐 대응 문건’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다. 한겨레·문화방송(MBC)·뉴스타파 공동취재팀이 입수한 쿠팡의 ‘위기관리 대응 지침’에는 과로사 사건 은폐 의도가 담겨 있다. 문건에는 “유족을 우리 편으로 만든다. (유족에게) 오염된 정보를 차단한다”고 돼 있다. 또한 고용노동부와 경찰의 조사가 확대되는 걸 방지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 지침은 2021년 1월 만들어졌고, 최종 수정일은 2023년 3월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10월 김 의장(당시 쿠팡 대표이사)은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숨진 장덕준씨가 일하는 시시티브이(CCTV) 영상 내용을 회사 쪽에 유리하게 편집하라고 당시 임원에게 지시한 사실도 한겨레 보도로 드러났다. 김 의장은 “그(장덕준)가 열심히 일했다는 내용의 메모는 절대 남기지 말라. 그가 왜 열심히 일한 사람이지? 말이 안 되잖아. 그들은 시급제 노동자”라는 지시 문자를 남기기도 했다. 김 의장이 최소 2020년 10월부터는 쿠팡의 열악한 노동 실태를 파악했다는 뜻이다.
변론서에서 거짓 정보를 담은 흔적은 또 있다. 쿠팡 쪽은 “주주들의 피해를 주장한 기간 5만 명에 달하는 쿠팡 직원 중 단 한 건의 사망만을 특정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열악한 노동환경이라는 주장을 부인하고 사망자가 극히 적다는 점을 강조하는 취지다. 쿠팡이 언급하는 기간은 쿠팡 상장부터 주가 폭락 시점에 해당하는 2021년 3월11일~2022년 7월14일이다.
이 또한 사실이 아니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집계와 언론보도 등을 보면, 이 기간 사망자는 확인된 사례만 최소 2명이다. 2021년 3월24일 인천 계산동에서 40대 쿠팡 택배 노동자가 숨졌다. 2021년 12월24일 쿠팡 동탄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50대 노동자가 뇌출혈로 쓰러진 뒤 2022년 2월11일 숨졌다.
그런데도 1심 재판을 맡은 뉴욕남부지방법원 버넌 브로더릭 판사는 2025년 9월 쿠팡의 손을 들어줬다. 쿠팡과 경영진이 주주를 의도적으로 속이려 했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취지에서다. 재판부는 쿠팡의 노동환경, 노동자의 과로와 사망 등은 이미 기존 보도로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었고, 중대한 허위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 쿠팡의 알고리즘에 대한 주장도 구체적 근거가 없다는 등 이유로 기각됐다. 이 소송은 현재 주주들의 항소로 2심이 진행 중이다.
미국서 문제 안 된다? 대규모 과징금 사례 있어
쿠팡은 최근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밝힌 공식 입장도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을 받았다. 문제의 발언은 2025년 12월17일 국회에서 열린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 관련 청문회에서 나왔다. 청문회에 나선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대표는 이 사태와 관련해 “미국법상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할 의무는 없었다. 사실 미국에서 이런 종류의 데이터 유출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주장이 사실과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370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안은 미국에서도 개인정보 관련 법 위반일 가능성이 커서다. 한국 법무법인 대륜의 현지 법인인 미국 로펌 에스제이케이피(SJKP)에서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 소송을 맡은 손동후 뉴욕 변호사는 “유출된 정보는 굉장히 긴밀한 사항들이다. 금융정보가 유출되지 않았다고 해서 법률 위반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며 “개인정보 보호는 연방법의 개인정보 보호와 소비자보호법 등 여러 법령에서 규정하고 있다. 이 사태가 법률 위반이라고 말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개인정보 보호에 실패해 대규모 과징금이 부과된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사건이 꼽힌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영국의 컨설팅 기업이 페이스북 이용자 정보를 사용자 동의 없이 대규모로 부적절하게 이용한 것을 말한다. 피해자는 8700만 명에 달했고, 페이스북의 정보 보안 실패가 도마 위에 올랐다. 미국 연방거래원회(FTC)는 2019년 조사 끝에 사용자 개인정보를 침해했다는 위반 사항을 들어 페이스북에 50억달러(약 7조28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로저스 대표가 공시 의무가 없다고 한 것도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필스버리 로펌의 브라이언 핀치 변호사는 “공시 의무 판단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준은 사건이 ‘주주에게 중요한 정보’에 해당하는지 여부”라며 “ 모든 사이버보안 사건이 자동으로 공시 의무를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은 공시를 하든 하지 않든 그 판단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탈팡’ 이어지는데 “영업 차질 없다”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보고한 내용도 논란거리가 됐다. 쿠팡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공식 발표한 2025년 11월29일 이후 2주가 흐른 뒤인 12월17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8-케이(K)’보고서를 제출했다. 미국 상장기업이 중요한 사건 발생이나 변동 사항에 대해 ‘4영업일 이내’ 제출해야 하는 수시 보고서다.
보고가 늦은 것도 문제였지만, 이 보고서에서 쿠팡은 “중대한 보안 사고”가 있었다면서도 “영업에는 차질이 없다”고 적었다. 그러나 이 문장 역시 한국의 상황을 축소해 반영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용자의 쿠팡 이탈, 즉 ‘탈팡’이 수치로도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 플랫폼 모바일인덱스를 보면, 12월20일 기준 쿠팡의 일간활성이용자 수는 1484만3787명으로, 10월5일(1446만 명) 이후 약 2개월 만에 최저치다. 카드 결제량도 감소했다. 조승환 국민의힘 의원실이 카드 6개사(KB국민·신한·우리·하나·삼성·현대)의 쿠팡 결제 이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이 알려진 이후 11월30일부터 12월13일까지 2주 동안 쿠팡에서 결제 승인 건수는 4495만4173건으로 나타났다. 이는 유출 사태 발표 직전 2주간(11월16~29일)의 4683만7121건보다 188만2948건, 약 4.1% 감소한 수치다.
이 때문에 쿠팡이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해서도 주주들을 속였다며 미국에 추가로 소송이 제기된 상황이다. 2025년 12월18일 쿠팡 주주들은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법원에 쿠팡과 김 의장 등에 대해 “허위 공시로 인한 주가 하락”에 손해배상 책임을 제기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전에 보안상 문제가 없다고 공시했음에도 중대한 결함이 발견됐다는 취지다. 또한 쿠팡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을 2025년 11월18일 인지했으나 4영업일 내 의무공시를 이행하지 않은 점도 주요 소송 이유에 포함됐다.
강장묵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인공지능보안학)는 “쿠팡은 인공지능 서비스에 대해서 고객정보를 지나치게 활용할 것만을 생각하고 정보 보호는 구시대적 시스템인 취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사태 이후) 태도에도 구시대적인 모습을 보인다”며 “기술 주도 사회에서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으로 고객정보를 모집하고 성과를 내는 기업들은 보안에서도 철저히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쿠팡 쪽은 미국 재판 과정에서 주장과 로저스 대표의 청문회 발언 등에 관한 한겨레21의 거듭된 질의에도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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