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30
집단소송, 권리인가 권력인가 (3)
경미한 꼬투리 잡아 무차별 소송
거액 합의금 목적인 블랙 컨슈머
기업은 피소 사실만으로도 타격
사회통념 넘어선 주장과 배상액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는 추세
집단소송은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법적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반면 그만큼 소송 문턱이 낮아 남용 우려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따라서 집단소송제도 추진 과정에서 균형점을 찾지 않으면, 거액의 합의금을 노리는 '블랙 컨슈머 소송'이 잇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집단소송이 활성화된 미국이 대표적인 선례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집단소송에서 원고 측의 주장이나 청구가 지나치게 과도한 것으로 평가되는 사건은 판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4월 '동양사태'로 불린 동양증권(현 유안타증권) 집단소송도 법원이 배상금을 요구하는 집단소송 참가자의 주장을 배척하고 기업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 소송은 지난 2013년 동양그룹이 상환능력이 없음에도 회사채를 팔아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는 의혹으로 촉발됐다. 피해자 1200여명은 동양증권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동양증권의 증권신고서에 중요사항의 거짓 기재나 기재 누락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합리적인 투자자라면 위험성을 인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이 판결은 대법원의 상고 각하로 그대로 확정됐다. 그러나 10년간 법적 다툼이 이어지면서 집단소송 당사자들과 기업 양측 모두 손실을 입었다.
네이트와 싸이월드 서버 해킹 사건도 유사하다. 당시 중국 해커가 3490만명의 개인정보를 빼돌렸고, 이 가운데 2만여명은 SK커뮤니케이션즈를 상대로 1인당 30만원의 위자료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2018년 대법원은 사측이 당시 침입차단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던 점을 고려할 때 "사회통념상 합리적으로 기대 가능한 정도의 보호조치를 다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고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아이폰 사용자 299명이 애플을 상대로 낸 위치정보 무단 수집 관련 손해배상 소송도 7년간 이어졌으나, 대법원은 2018년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수집된 정보로 특정 기기나 사용자를 식별할 수 없고, 정보수집 버그는 기술 정착 과정에서 발생한 '시행착오'라고 봤다.
대형로펌 출신 판사는 "집단소송이 남용되면 원치 않는 사람까지 소송에 끌려 들어갈 수 있다"며 "예전부터 반(反)기업적 제도로 인식돼 왔다"고 지적했다.
소비자 보호법이 강력한 것으로 평가되는 미국은 집단소송 제도가 잘 발달돼 있다. 이로 인해 다수의 소비자가 기업을 고소하는 집단소송도 흔하다. 은행, 소매업체, 기술 기업이 이들의 주요 타깃이며, 소송은 매년 수만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블랙 컨슈머 소송이 과도하게 제기되거나 경미한 문제의 소송도 남발하는 부작용이 상존한다. 소송비용과 합의금은 기업의 재정적 부담으로 이어지고, 결국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원고 수가 많아질수록 기업의 부담은 커진다"며 "현재는 원고들의 주장도 제각각이어서 사법부 입장에서도 재판 진행에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남소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반론 역시 있다. 법무법인 대륜의 지민희 변호사는 "소송 '남발'이 반드시 해악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제도 도입 초기에 발생할 수 있는 과도한 소송은 사법 심사를 통해 정당성과 한계가 정비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반박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2020년 12월 집단소송제 법무부 공청회에서 "집단소송 대상에 중소기업이 포함될 여지가 많고 '블랙 컨슈머 소송'도 증가할 수 있다"면서 "재판에서 승소하더라도 피소 사실만으로 소비자 신뢰가 약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은솔 기자 (scottchoi15@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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