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1
미국에서 자사의 내부정보를 토대로 타사 주식에 투자해 이득을 챙긴 행위를 내부자거래로 판단하고 벌금을 부과한 사례가 나온 가운데 우리 법에도 관련 규제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법상 내부자거래는 자사의 주식을 거래한 경우에 국한돼 있다. 이에 국내에서 미국의 사례 같은 경우가 발생한다면 제재하는 데 한계가 있고 자본시장의 공정성, 신뢰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법조계에서는 내부자거래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의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경쟁사 주가 상승에 베팅...美 법원, 부당이득 3배 벌금 부과
내부자거래의 범위를 둘러싼 논의에 불을 지핀 건 미국에서 발생한 이른바 '그림자 내부거래' 사건이다. 그림자 내부거래는 자사의 미공개 내부정보를 바탕으로 다른 회사의 주식을 사들여 이익을 얻는 행위를 일컫는다.
앞서 2016년 바이오제약 업체 메디베이션의 임원 매슈 파누워트는 대형 제약 업체 화이자가 메디베이션 인수를 추진한다는 내부정보를 듣고 자사 주가와 움직임이 연동된 경쟁사의 주가 상승에 베팅하는 옵션을 매수했다.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파누워트의 행위가 내부자거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9월 법원은 SEC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파누워트에게 부당이득의 3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했다.
그런데 최근 호반그룹이 LS 지분을 사들이면서 국내에서도 그림자 내부거래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호반은 양사 자회사들이 소송전을 벌이는 와중에 지분을 매입했다. 소송 상대방 측 주식을 사들인 것이다. 게다가 LS 자회사의 일부승소 판결로 주가가 뛰어 결국 호반에 호재가 될 상황이 벌어지자 내부정보를 활용해 주식을 거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명시적인 법적 규정 필요...불확실성 해소해야"
법조계에서는 호반 사례를 그림자 내부거래로 보기 어렵지만, 공정한 거래 질서를 확보하기 위해 이 같은 사건을 규제할 법령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법률사무소 공간과길의 권문규 변호사는 "그림자 내부거래는 정보가 불평등한 상태에서 거래하는 불공정 거래"라며 "현행 자본시장법상 형사 처벌이 어렵고 달리 규제할 근거 조항이 다소 미비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할 입법적인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법무법인 디엘지의 안희철 대표변호사도 "그림자 내부거래는 기존의 내부자거래 규제를 회피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불공정 거래"라며 "내부자거래의 규제 범위를 확대하고 이를 자본시장법에 명시적으로 규정해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고 했다.
관련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렸다. 법무법인 세움의 이승민 변호사는 "우리나라 자본시장법은 미국 증권법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미국에서 그림자 내부거래를 처벌하는 파누워트 사례 등의 판례가 확립되는 경우 국내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법무법인 대륜의 조영곤 변호사는 "최근 금융당국과 검찰의 태도, 제도 개선 방향 등을 종합하면 처벌의 필요성을 염두에 두고 처벌 조항 신설 또는 법조문 개정 등을 논의할 여지가 있다"며 "이 과정에서 미공개 정보가 업계 전반의 주가에 미치는 영향, 산업 전반에 영향을 주는 내부정보 활용 의심 사례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논의 과정에서 관건은 그림자 내부자거래의 기준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미국의 사례는 한 회사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경제적으로 연관된(sharing market connection) 다른 회사의 주식을 거래하는 경우까지 내부자거래로 확장한 경우였다"며 "'경제적으로 연관된'이라는 용어는 상당히 막연하고 광범위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이를 정확하게 정의하지 않으면 경쟁업체 또는 계열사 주식에 대한 거래가 부당하게 제한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박선우 기자(closely@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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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내부거래]③ 자본시장 위협에 법조계 "규제 필요" [넘버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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