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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남의 이슈법정] ‘암살자(들)’, 법은 역사를 심판할 수 있는가
2026-10-26
![[이제남의 이슈법정] ‘암살자(들)’, 법은 역사를 심판할 수 있는가](/_next/image?url=https%3A%2F%2Fd1tgonli21s4df.cloudfront.net%2Fupload%2Fboard%2Fbroadcast%2F20261026084133984-2da9d15faf9f7a06.webp&w=3840&q=100)
대한민국 헌법 제22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같은 헌법 제21조 제4항은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침해한 경우 피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한다. 창작의 자유와 명예의 보호는 헌법 안에서 나란히 서 있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당연히 이기지 않는다.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이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제작진은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됐고, 국회에서는 감독을 국정감사에 부르자는 요구와 창작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론이 충돌했다. 영화의 사관이 옳은지 그른지는 필자가 판단할 영역이 아니다.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짚고 싶은 것은 이 논란에서 법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법에 기대서는 안 되는 일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창작의 자유는 결과에 대한 면책이 아니다.
예술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돼 있다고 해서 창작물이 법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은 아니다. 실존 인물과 생존 유족이 있는 사건을 다루면서 공식 수사 결과와 다른 가능성을 서사로 택했다면, 관객이 그 서사를 사실로 받아들일 위험은 창작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영화가 12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은 점을 두고 국감에서 등급 분류의 적절성이 문제된 것은, 그 위험이 사건을 모르는 청소년에게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당한 쟁점이다.
창작자가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책임이 끝나지는 않는다. 역사를 소재로 삼는 순간 창작자는 역사 앞에 설명할 의무를 함께 짊어진다. 그 설명을 요구하는 비판은 검열이 아니라 창작이 치러야 할 정당한 대가다.
그러나 명예훼손의 성립은 법리로 가려야 한다
형법상 사자명예훼손은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만 성립한다. 법은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고, 단정과 가능성 제기를 구분한다. 검증 가능한 구체적 사실의 단정이어야 비로소 범죄의 문턱에 들어서며, 그 판단은 작품 전체의 맥락 속에서 법원이 내린다. 고발이 접수됐다는 사실만으로 범죄가 성립한 것도 아니고, 창작물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죄가 배제되는 것도 아니다.
이 지점에서 양쪽 모두 경계할 것이 있다. 영화를 비판하는 쪽은 고발을 곧 유죄의 선언처럼 쓰려는 유혹을, 영화를 옹호하는 쪽은 창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법적 검토를 거부하려는 유혹을 각각 경계해야 한다. 법이 할 일은 둘 중 어느 쪽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증거와 법리에 따라 묵묵히 결론을 내는 것이다.
국회의 감시권에도 헌법이 그은 선이 있다
국회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 판정 근거를 따지고, 공공기관의 제작 지원 과정을 점검하는 것은 국정감사의 본령이다. 국가 예산과 행정 판단이 개입된 곳이라면 어디든 감사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작품의 해석 자체를 두고 창작자를 증언대에 세워 연출 의도를 묻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 질문에 법적 구속력이 없더라도, 다음 창작자에게 보내는 신호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원칙은 영화의 성향과 무관하게 적용돼야 한다. 지난해에는 전혀 다른 시각의 역사 영화 감독이 국감 참고인으로 출석한 전례가 있었다. 오늘 어느 영화를 국감장에 부르자고 요구하는 쪽도, 그것이 창작에 대한 재갈이라고 반대하는 쪽도, 영화의 성향이 바뀌었을 때 같은 말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원칙이 진영에 따라 바뀐다면 그것은 원칙이 아니라 전략이다.
논쟁의 수단은 법의 테두리 안에 있어야 한다
논란이 격해지면서 평점 조작이 의심되는 정황으로 플랫폼이 수사를 의뢰하고, 출연 배우의 주거지를 찾아가거나 광고 출연에 압력을 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는 지적이 국감장에서 나왔다. 명분이 무엇이든 조직적 평점 조작은 업무방해죄의 검토 대상이고, 개인의 주거지를 찾아가 압박하는 행위는 스토킹처벌법이 금지하는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같은 기준은 반대편에도 적용된다. 영화를 비판한 사람을 상대로 한 집단적 공격이나 신상 공개 역시 같은 법의 적용을 받는다. 어느 쪽이든 역사의 진실을 지킨다는 명분이 타인의 생업과 평온을 침해할 권리를 주지는 않는다. 법치국가에서 명분은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으며, 명분이 강할수록 수단은 더 엄격하게 법 안에 있어야 한다.
법은 역사의 심판자가 아니라 논쟁의 울타리다
역사적 진실은 법정에서 확정되지 않는다. 반세기 전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이 경쟁하는 것은 건강한 사회의 징표다. 법이 할 일은 어느 해석이 옳은지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쟁이 허위 사실의 유포나 폭력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울타리를 치는 것이다. 울타리 안에서는 영화도, 영화에 대한 비판도, 비판에 대한 반박도 모두 자유다.
영화가 틀렸다고 믿는 사람은 그 틀림을 법정이 아니라 사료와 토론으로 입증하면 된다. 영화가 옳다고 믿는 사람도 그 옳음을 국가가 보증해 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3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각자 무엇을 보고 무엇을 믿을지는 국가가 정해 줄 일이 아니며, 그 판단을 시민 대신 국회나 수사기관이 내리겠다고 나서는 순간 보호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권력이다.
헌법은 국민에게 역사를 해석할 자유를 주었고, 그 해석으로 타인의 명예를 침해했는지 가릴 권한은 법원에 주었다. 어느 쪽도 국가에 역사를 확정할 권한을 준 적은 없다. 결국 이 논란에서 시험대에 오른 것은 영화 한 편이 아니라, 다른 해석을 견디면서도 법의 선을 지키는 우리 사회의 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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