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6
자녀가 부모 명의로 3500만 원 대출
카드사 “부모가 계약자… 변제하라”
재판부 “휴대전화 인증, 신뢰성 담보 안 돼”
도용된 명의로 대출이 실행됐다면 본인 확인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금융사에 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은 지난달 15일 한 카드사가 60대 남성 A 씨를 상대로 낸 신용카드이용대금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A 씨는 2022년 근무 중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의식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중증 장애 진단을 받았다.
이후 산재보험 처리를 위해 자녀들이 A 씨의 휴대전화를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자녀 중 한 명이 A 씨 명의로 약 3500만 원을 무단 대출받으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해당 자녀는 A 씨 명의로 카드를 발급하고 대출을 받았으며, 이 같은 사실이 발각되자 A 씨 부부에게 대출금을 변제하겠다는 차용증을 작성했다.
그런데 카드사 측은 A 씨에게 대출금을 상환하라는 독촉장을 보냈다. 비록 자녀가 명의를 도용했다 하더라도, 휴대전화를 통해 본인 인증 절차를 거쳐 A 씨 명의의 계좌로 대출금이 송금됐기에 전자거래기본법 제7조 제2항 제2호에 따라 A 씨를 대출 계약자로 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A 씨 측은 대출 계약이 실행되기 훨씬 전부터 A 씨가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였고, 입금된 대출금 또한 곧바로 자녀 계좌로 이체됐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계약은 당사자 간 의사의 합치에 의해 성립하는데, 대출 당시 피고의 의식 상태를 봤을 때 명의가 도용된 것이 인정되므로 계약은 성립하지 않았다”며 “A 씨 부부가 자녀들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허락했더라도, 본인 인증 절차 진행에 동의하거나 이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까지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휴대전화를 통한 인증은 신뢰성 및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완전한 수단이 아니다”며 “원고는 본인 확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A 씨를 대리한 법무법인(로펌) 대륜 손윤정 변호사는 “금융기관이 형식적인 비대면 실명 확인을 거쳤다는 이유만으로 금융사고 책임을 고객에게 전가한다면 비대면 거래의 본인 확인에 관한 주의 의무를 경감시키는 부당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카드사가 영상통화, 신분증 확인 등 강화된 본인 확인 절차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해 기각 판결을 받아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콘텐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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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도용당해 실행된 대출, 상환 독촉에…法 “본인확인의무 지켰어야”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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