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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 기본법 시행 이후 헬스케어 기업의 전략적 변곡점

언론매체 메디파나
작성일

2026-02-26

조회수 1

[기고] AI 기본법 시행 이후 헬스케어 기업의 전략적 변곡점

인허가 준수를 넘어 '의료 사법 리스크' 관리의 시대로
법무법인(유한) 대륜 이서형 변호사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이하 AI 기본법)이 시행된 이후 제약·바이오 및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계는 규제 불확실성에서 일정 부분 벗어난 모습이다. 정부가 보건의료 산업 진흥과 혁신 촉진을 고려해 생명·건강과 직결된 고영향 AI의 적용 범위를 유연하게 해석하고 의사나 약사 등 전문 의료인의 개입이 전제된 진단 보조 솔루션 등에 대해서는 규제를 비교적 제한해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책적 접근은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 발전의 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합리적 조치다. 특히 본격 시행된 디지털의료제품법을 통해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aMD) 등에 대한 맞춤형 식약처 인허가 트랙이 가동되는 등 헬스케어 분야의 행정적 규제 체계도 확실히 안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 환경의 안정화가 곧 법적 리스크의 해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료 AI의 사법적 책임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 임상 현장의 형식적 개입과 실질적 통제 사이의 법적 간극

일부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은 자사의 AI 솔루션 최종 단계에 의료진이나 약사의 승인 절차를 두는 방식으로 고영향 AI 규제의 문턱을 넘고자 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 분쟁이 발생해 법원의 판단 대상이 될 경우, 초점은 '의료진 개입의 존재'가 아니라 그 개입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실질적인 임상적 통제 기능'을 수행했는지 여부에 맞춰진다.

예컨대 암 조기 진단 AI가 특정 연령대 여성 환자의 데이터를 충분히 학습하지 못해 악성 종양을 오진한 경우나 항암제 용량 권고 알고리즘이 간 기능 수치를 과소 반영해 중대한 부작용을 초래한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때 법원은 단순히 '의료진이 최종 승인 버튼을 눌렀는지' 여부를 살피지 않는다. 해당 AI가 의료진이 합리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수준의 임상적 근거와 설명 가능성을 제공했는지, 기업 내부에 알고리즘 편향 및 오류를 교차 검증하는 통제 체계가 존재했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다.

만약 바쁜 임상 현장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승인 절차가 실질적 검증 없이 기계적으로 이뤄지도록 시스템이 설계됐다면 이른바 인간 개입은 헬스케어 기업의 면책 논리가 아니라 제품 안전성 관리 체계의 치명적 결함을 보여주는 정황으로 역평가될 수 있다. 이는 경영진이 합리적인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감독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는 지배구조 리스크로 확장될 수 있다. 중대한 환자 피해가 발생할 경우, 이는 주주대표소송이나 이사회 감독 의무 위반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글로벌 빅파마 파트너십 및 해외 B2B 시장의 새로운 기준

2026년 현재, EU AI Act(인공지능법)의 본격적인 적용과 함께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은 이미 최고 수준의 의료 AI 거버넌스를 요구하고 있다. 글로벌 다국적 제약사(빅파마)나 대형 의료기관은 K-헬스케어 기업과 신약 물질 기술 수출이나 공동 임상 계약을 논의할때, 단순히 한국 식약처 가이드라인 준수 여부만을 묻지 않는다. 학습에 사용된 민감한 환자 의료 데이터의 적법성, 예측 알고리즘의 투명성, 전사적 생명윤리 통제 체계를 입증할 구체적 자료를 요구하는 추세다.

국내 규제 적용을 피할 수 있다는 사정은 깐깐한 해외 파트너사나 규제기관(FDA, EMA 등)에게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내부 의료 AI 거버넌스 체계가 미흡할 경우, 글로벌 헬스케어 공급망에서의 배제는 물론 계약상 매우 치명적인 진술 및 보장(Representations & Warranties) 조항의 수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 제약·헬스케어 산업에서 AI 거버넌스는 글로벌 시장 접근을 위한 절대적 전제 조건이다.

◆ 포스트 AI 기본법 시대를 위한 헬스케어 기업의 과제

제약·바이오 및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은 규제 회피라는 수세적 접근을 버리고 환자 안전과 신뢰 기반의 지속가능한 경쟁력 확보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문제 발생 이후의 사후 대응은 비용이지만 설계 단계에서의 통제 체계 구축은 기업 가치를 지키는 전략적 투자에 가깝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과제를 제안한다.

① 증명 가능한 의료적 책임성의 시스템화

임상 현장의 의료진이나 연구원이 AI 도출 결과를 검토하고, 의학적 판단에 따라 필요시 수정 또는 거부한 과정을 EMR(전자의무기록)이나 임상연구 시스템에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감사 로그를 제품 기획 단계부터 구축해야 한다. 이는 향후 의료 분쟁이나 임상 실패에 따른 주주 소송 등에서 기업과 경영진이 합리적 주의 의무를 다했음을 입증하는 핵심 방어 수단이 된다.

② 의료 AI 가치사슬 전반에 대한 계약 구조의 재정비

신약 및 디지털 치료기기 개발을 위해 외부 파운데이션 모델을 활용하거나 병원·약국에 AI 솔루션을 납품하는 경우 리스크를 명확히 해야 한다. 기술적 결함, 오진, 민감 의료 데이터 유출 등으로 인한 책임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솔루션 제공사와 병원 등 도입 기관 간의 정교한 리스크 배분 계약 구조가 필수적이다.

③ 환자 안전 최우선의 Compliance by Design 체계 확립

생명을 다루는 헬스케어 기업에서 AI 리스크는 특정 IT 개발 부서만의 문제가 아닌 기업 존폐를 가를 전사적 거버넌스 이슈다. 파이프라인 기획 및 솔루션 개발 초기부터 의학부(Medical Affairs), 인허가(RA), 법무, 정보보안 부서가 함께 참여하는 통제 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이사회 차원의 핵심 의제로 상시 관리하는 지배구조가 요구된다.

◆ 합법의 착시를 넘어 환자 신뢰의 프리미엄으로

정부의 유연한 규제 해석은 헬스케어 기업에 기술 혁신의 골든타임을 제공한 것이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리스크 관리의 엄중한 의무를 덜어준 것이 아니다. 2026년 AI 기본법 시대, K-바이오와 디지털 헬스케어의 진정한 경쟁력은 인허가 규제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투명하고 입증 가능한 의료 AI 거버넌스를 선제적으로 구축하는 기업만이 글로벌 파트너와 환자들로부터 생명과 건강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동반자로 평가받을 수 있다. 탄탄한 AI 거버넌스는 매몰비용이 아닌 기업의 본질적 가치와 환자 안전을 지키는 가장 훌륭한 전략적 자본 배분이다.

AI 기본법 시행 이후 헬스케어 생태계에 던져진 과제는 명확하다. 합법은 최소 기준에 불과하다. 환자 신뢰는 인허가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분쟁의 순간에 기업이 어떤 통제와 기록, 책임 구조를 갖추고 있었는지로 증명된다.

|기고| 법무법인(유한) 대륜 이서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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