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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총액만으로 퇴출 가능할까…상장폐지 가처분 인용이 남긴 질문
2026-10-19

-권일 법무법인(유한) 대륜 변호사 법률칼럼
시가총액 기준에 미달했다는 이유로 상장폐지 결정을 받은 기업들이 법원에서 일단 시간을 벌었다. 서울남부지법은 지난 2일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각 한 곳이 한국거래소를 상대로 낸 상장폐지 결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각각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두 회사에 대한 상장폐지 결정의 효력은 본안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정지되고, 정리매매도 진행되지 않는다. 부실기업을 신속히 퇴출하겠다며 올해 상장폐지 요건을 잇따라 강화해온 금융당국과 거래소의 정책에 대해 법원이 처음 내놓은 판단이라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의미가 크다.
법원이 문제 삼은 것은 시가총액 기준을 높였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기업에 방어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상장사를 퇴출하도록 설계했다는 점이다. 시가총액 미달은 이의신청이 허용되지 않는 형식적 상장폐지 사유여서, 기준에 미달하면 기업은 상장적격성을 소명할 기회 없이 퇴출된다. 재판부는 기준에 미달하더라도 상장적격성이 인정될 여지가 있는데도 의견진술이나 이의신청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은 상장법인의 절차참여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시가총액이 기업의 내재가치뿐 아니라, 경기나 시장의 자금 흐름 같은 외부 요인에도 크게 흔들리는 지표라는 점을 생각하면 수긍할 만한 지적이다.
이러한 문제는 회복 요건과 적용 시기에서 더 두드러졌다. 거래소는 관리종목 지정 후 90거래일 안에 시가총액 기준을 45거래일 연속 충족해야 상장폐지를 면하도록 회복 요건을 바꿨다. 종전에는 연속 10거래일, 누적 30거래일을 충족하면 됐다. 재판부는 회복 요건을 이처럼 강화한 타당성을 뒷받침할 실증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상향된 기준의 적용 시기를 당초 내년 1월에서 올해 7월로 6개월 앞당긴 부칙에 대해서도 공익적 목적이라는 추상적 설명 외에 구체적인 필요성이 제시되지 않았다고 봤다. 기준은 높아졌는데 대응할 길과 시간은 오히려 좁아진 셈이다. 재판부는 이런 사정을 종합해 해당 상장폐지 요건 조항과 부칙 조항이 비례의 원칙에 현저히 어긋나 위법·무효라고 봤다.
이 같은 판단은 상장규정의 성격에 관한 기존 법리 위에 서 있다. 대법원은 거래소의 상장규정이 형식상 약관이지만 모든 상장법인에 적용되는 실질적 규범의 성격을 갖는 만큼, 특정 조항이 비례의 원칙이나 형평의 원칙에 현저히 어긋나 정의관념에 반하거나, 다른 법률이 보장하는 상장법인의 권리를 지나치게 제약하면 무효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대법원 2007. 11. 15. 선고 2007다1753 판결). 회사정리절차 개시신청만으로 재무상태나 회생 가능성을 따지지 않고 상장을 폐지하도록 한 규정이 무효로 판단된 것도 이 판결에서였다. 이번 결정은 같은 법리를, 소명 절차 없이 시가총액 미달만으로 상장을 폐지하도록 한 조항에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번 결정의 의미를 넓게 해석하는 데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가처분은 본안판결 전까지 효력을 잠정적으로 멈추는 절차일 뿐이어서 본안에서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2021~2025년 상장폐지 관련 가처분 85건 가운데 인용은 2건에 그쳤다. 그만큼 이례적인 결정이지만, 같은 사유로 상장폐지 결정을 받은 다른 기업들까지 곧바로 구제되는 것은 아니다. 가처분을 신청한 기업들은 각자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영향은 소송 당사자에 그치지 않고 있다. 거래소는 결정 당일 상장규정 시행세칙을 개정해 소송 당사자가 아닌 기업에도 상장폐지를 유예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고, 7일에는 시가총액 미달로 관리종목에 지정된 기업들의 후속 상장폐지 절차를 당분간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원은 절차적 측면을 문제 삼았을 뿐 해당 기업들의 재무 건전성이나 기업가치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주주 입장에서도 상장폐지 절차가 중단되면 정리매매가 진행되지 않아 보유 주식을 처분하기 어려운 상태가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대응의 시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상장폐지 결정이 내려지면 정리매매까지 남은 시간은 길지 않다. 이번에 가처분이 인용된 기업 중 한 곳도 상장폐지 결정 바로 다음 날 신청서를 냈다. 따라서 규정과 절차상 다툴 여지가 있는지, 시가총액 회복이나 자본확충 계획처럼 상장적격성을 설명할 자료를 갖추고 있는지는 결정 통지를 받기 전부터 미리 점검해두는 편이 좋다. 이사의 책임 문제도 생각해야 한다. 지난해 7월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어졌다. 상장폐지는 주주가 가진 주식의 환금성과 가치에 직결되는 만큼, 상장 유지를 위해 이사가 어떻게 대응했는지가 주주 이익 보호의 관점에서 따져질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둘 만하다.
거래소는 시행세칙을 개정하고 상장폐지 절차를 유예한 데 이어, 법원 결정에 이의신청을 하는 한편 금융당국과 대응 방안을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부실기업의 신속한 퇴출과 기업의 절차적 권리 보장은 어느 한쪽만 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번 결정이 두 가치 사이의 균형점을 다시 찾는 계기가 될지, 본안 판단과 제도 보완의 방향을 지켜볼 일이다.
이동오 기자 (canon3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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