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개정안 여파] 이사 충실 의무 확대, 주주 보호 기대 속 남은 숙제들
상법개정안이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봅니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한 상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환영과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주주의 이익을 보호할 법적 장치가 마련됐다는 기대감이 있지만, 이사가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될 경우 책임을 묻는 소송이 급증할 수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에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을 강화하고 이를 객관화, 문서화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달 3일 가결된 상법개정안의 핵심 중 하나는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 의무) 개정이다. 기존까지는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만 규정돼 있었지만, 개정안에서는 이사가 회사뿐 아니라 주주에 대해서도 충실 의무를 지도록 했다. 또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조항도 신설됐다.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이사들의 의사결정이 더 신중해지고, 주주와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이전에는 회사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했지만, 앞으로는 이사회가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다뤄야 할 의무까지 지게 되면서다.특히 이사들의 의무와 책임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무법인 동인의 임동한 변호사는 "기존 판례에서 논의되던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는 주로 회사를 중심으로 해석됐고, 이에 따라 지배주주와 회사의 이해가 상충하는 상황에서 일반주주의 이익이 침해될 수 있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며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가 명시되면서 이사는 '모든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공평하게 대우해야 할 법적 의무를 부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법무법인 미션의 유석현 변호사는 "단순히 법에 몇 단어를 추가한 정도가 아니라, 이사의 의무에 대한 상법의 방향성 자체를 명확히 선언한 것으로 이사의 회사 운영 실무의 근간을 전부 뒤흔드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주주권익 보호를 더 강화하고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변화가 초래될 것"이라고 짚었다.법무법인 세움의 변승규 변호사는 "대주주뿐 아니라 소수주주의 이익도 경시하지 않는 경향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법무법인(유한) 린의 김지호 변호사는 "회사는 충실 의무 이행을 위한 제도적 장치, 예를 들어 이사회의 독립성·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이사추천위원회, 이사보수위원회 등을 가동할 가능성이 높다"며 "기업 지배구조가 개선될 수 있고, 장기적으로 주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ESG 경영에도 더 노력할 여지가 있다"고 전했다. '주주 위한 결정' 어떻게 판단하나…소송 급증 가능성도 하지만 '총주주의 이익'이나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 등 개정안의 내용이 추상적이라는 점에서 경영현장에서는 주주를 위한 결정이었다고 판단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법인 원의 이영주 변호사는 "주로 문제되는 물적분할을 예로 들면, 분할된 자회사는 독립된 법인으로서 성장성이 한눈에 인식되고 핵심 역량에 집중하면서 투자 받기 좋은 구조가 되지만, 모회사의 소액주주들은 자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되고 모회사의 핵심 사업 분리로 보유한 주식의 가치가 하락하게 된다"며 "(이러한 결정이) 회사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경영상의 결단인지, 대주주 등 특정인을 위한 선택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사의 결정이 일부 주주의 이해와 충돌하거나 주주의 이익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될 때 법적 책임을 묻는 소송이 급증할 수도 있다. 형사상으로는 배임죄 적용 범위가 넓어질 가능성도 있다.김 변호사는 "기존에는 이사가 개별주주들에 대한 관계에서 그들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였으나, 이번 개정으로 이사가 주주의 사무처리자가 될 수도 있어 충실 의무 위반이 주주의 손해(주식가치 훼손)로 이어질 경우 배임죄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사들이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지면 적극적인 의사결정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법무법인 대륜의 신종수 변호사는 "이사의 의사결정에서 사후적 책임추궁 가능성이 확대돼 소극적인 경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변 변호사도 "회사의 이익보다 이사 본인이 책임지는 것을 회피하는 점을 우선해 경영하는 문제점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소액주주가 과도한 권리를 주장할 가능성도 예상된다. 변 변호사는 "대주주의 지분율이 크지 않은 회사의 경영권이 불안정해지거나 분쟁이 촉발될 가능성이 있어 보이고, 예외적으로 일부 소액주주들이 과도한 요구를 할 경우 오히려 회사 및 전체 주주에게 해가 되는 사례가 발생할 우려도 다소 존재한다"고 말했다. 유 변호사는 "상법조항은 판단기준이 확립될 때까지 추상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으므로 한동안 이번에 개정된 상법에 대해, 특히 회사 운영 실무상의 논란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사결정 과정 문서화·내부 감사 체계 마련 필요 이에 따라 기업은 내부통제 체계를 정비하고 주주와 적극적인 소통을 이어가는 등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사의 의사결정이 주주의 이익을 위한 일이었다는 점을 증명하고, 경영 판단의 과정을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신 변호사는 "경영진은 의사결정 때 충분한 정보수집, 대안 검토, 경영진과 주주 간 이해상충 여부 검토 등의 절차를 문서화해 책임경영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이 변호사는 "주주공시를 강화하고 이사회 결의 시 논의의 배경, 판단 근거 등을 명확히 준비해야 할 것"이라며 "경영진 또는 대주주와 거래할 때는 최대한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해 외부의 객관적 검토를 받는 등 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감사체계 정비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유 변호사는 "주주 간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는 모든 사안과 관련해 내부감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임 변호사는 "외부 전문가의 의견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기업설명회(IR) 기능을 강화하고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의 의견진술 기회를 충분히 부여하려는 노력 등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이외에 임원배상책임보험 가입도 대응책으로 제시됐다. 김 변호사는 "소액주주의 손해배상 청구에 대비하기 위해 임원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일종의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며 "다만 이 경우 면책사유가 지나치게 광범위하지는 않은지, 주주 제기 소송이 보상 대상에 포함될 수 있는 특별약관이 있는지 등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전했다.참고할 수 있는 실무사례가 쌓이는 것도 중요하다. 변 변호사는 "이사의 주주충실 의무에 대한 구체적인 의미와 범위가 확립되려면 향후 실무 및 판례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선우 기자(closely@bloter.net) [기사전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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